어크로스 더 오션

10월이 되면 영국 동남부 지역의 바다를 찾아갈 것이다.
가기 전 구글 맵에 해당 지역과 예약한 숙소의 위치를 핀으로 지정해두었다. 그러다 문득 런던의 대륙을 한눈으로 내려다 보고 싶은 무의식적이고 위계적인 찰나의 욕망으로 인해 손가락으로 지도를 축소했다.
와중에 바다 건너편의 대륙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 찍혀 있는 또다른 핀이 눈에 들어왔다. 지도 상에서는 거의 동일한 위도를 가진 두개의 점- 십진수 52.3692012, 1.7056182와 십진수 52.3742865, 4.5226889 - 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하나는 3년 전에 내가 다녀왔던, 하나는 내가 2주 후에 다녀올 공간이 되었다.

현재 내가 발 딛고 있는 영국 땅을 중심으로 바다 건너편에 위치한 대륙은 네덜란드의 땅으로, 내가 Haarlem 근처에 머물 당시 숙소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바닷가였다. 그곳의 해변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대지의 표면에 있는 가벼운 입자의 모래 알갱이들이 땅거미 지듯 땅을 거슬러 대륙 안 쪽으로 불어오는 모습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한달 후에 방문할 곳은 Wrentham 지역의 해변가로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 소설에 등장하는 지역이다. 사실 그 연유로 하필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어쩌다 나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때 네덜란드에 찾아 갔고 그의 책을 읽고 난 후에 이 곳을 고르게 되었을까. 그렇게 바다에 가게 되면 닿을 수 없는 건너편의 해안선과 삼년 전의 나를 떠올릴 수 밖에 없게 될까. 이곳의 바다는 나의 시야와 평행한, 수직적이고 납작한 이미지가 아닌 수평선을 추월하여 그 너머의 지역으로 향하는 기억 속의 이미지와 겹칠 것이다.

라고 나는 상상하기 시작한다.
상징적 우연으로 인해 가장된 관계의 성립 위에서 나는 대상을 과거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한탄스러운 일이다. 그치만 나는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혹은 처음처럼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본 사람이던가? 나의 의식에 걸리적거리는 이 우연의 일치가 어떤 현기증을 유발할 수가 있나? 나는 지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마음으로 그곳에 갈 채비를 조금씩 하는 중이다. 캠코더 용 sd 카드를 구매하고 장화 대신에 신을 수 있는 부츠 한켤레를 샀다. 나는 꽤 진지하게 가방 속에 무엇을 챙겨가야 할지, 그날 점심과 저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몇시쯤에 해안가로 걸어가면 좋을 지를 틈틈이 생각한다. 모든 것을 뜻대로 실행하고자 했을 때 내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기이한 틈새 또한 생각하면서.

바다는 정해진 형체가 없지만 그것이 무한 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유동하는 체라고 생각한다면, 혹은 조금 더 기하학적으로 두개의 대륙을 사이에 두고 끼워 맞춰진, 그러나 매순간 찌그러지는 직육면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나는 그것들 중의 일부의 면을 두가지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내가 그 바다를 보았다고 생각했고, Wrentham에 찾아갔을 때는 두 지역의 바닷가 이름을 돌아가며 읊었다.
두 차례의 만남이 주어지고 나니 그것과 나는 무한번, 무한대의 각도에서 마주칠 수 있는 물질이 되었고 그곳에 투사될 수 있는 의미는 그와 반비례하게 작아지고 있었다.

Wrentham과 Haarlem의 해변가에는 해변과 인접한 모래 절벽, 내륙을 향해 거슬러 올라 오는 가는 모래 줄기들이 동일하게, 대칭적으로 발견됐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기이하게 Wrentham에는 죽음을 사는 나무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닷 바람과 모래로 인해 수분기를 다 빼앗겨 매끈한 회빛깔의 외관을 가지고 있었고 나무의 뿌리와 줄기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무 기둥의 양쪽 말단은 쩍쩍 갈라져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세밀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절벽 면에서는 단면과 직각을 이룬 채 뻗어져 나온 -그것은 말 그대로 구십도로 돌아간 나무이다- 뿌리 만이 자신이 가진 형상의 전부인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형태가 완고하게 박혀있었다. 근데 그것이 뿌리였던가 줄기였던가? 모래 사장에 놓여 있던 나무들은 그것의 줄기와 기둥과 뿌리가 모래를 사이에 두고 모습을 드러냈다가 감추고 다시 드러내는 방식으로 비/가시화의 곡선을 타고 있었고 모든 것은 기이하게 구체적이고 우아했다. 그들은 인간인 나와 더이상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나누는 생명체는 아니었지만 그곳에는 모래와의 변형과 움직임을 공유하는 체體가 있었다. 생이 죽음에 비해 활기있고 충만한 것은 아니기에, 그것을 살았다고 죽었다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나무에게도, 모래에게도 할당된 것이 아니었고 나무와 모래와 바람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이를 더욱 분명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Wrentham에 도착한 첫날은 네시가량 숙소에 도착해 곧장 바닷가로 나섰고 다섯시가 조금 넘어서야 해변에 도착했다. 어둠이 등 뒤에서 빠른 속도로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다를 활보했다. 어두워질 때를 대비해 해변가의 출입구를 알아볼 수 있는 가늠표가 될 만한 것을 물색하던 중, 근처에 꽂혀있던 한 나무-나무 줄기의 끝부분이 아주 짙고 검게 타있고 길이는 내 키 정도 되어 보이는-를 발견했다. 그를 지표삼아 해안가를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왔고 그 날은 모래 절벽 근처에 놓인 폐 벙커와 일몰 직전에 수평선 너머로 뜬 무지개 정도를 보았다. 첫날 나의 시야에는 앞서 언급한 생생한 나무들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것들은 다음날 아침에 같은 출입구로 들어가 반대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서 목도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둘째 날 오전에 마주친 풍광의 모습은 강렬했고 황홀감에 젖어 몇시간 산책을 하다가 고속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바닷가의 출입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제 저녁의 그 지표 나무를 한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출구를 지나쳐 반대편 해안가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그 나무는 간밤에 쓰러져 검게 탄 줄기의 끝이 더 이상 하늘을 향하지 않고 모래에 박혀있었고 줄기의 중심부가 약간 휘어진 채로 얕은 포물선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나는 오늘 내가 반나절 동안 봐온 나무들이 나의 생 보다는 훨씬 오래 그러한 모양으로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곡선으로, 그러한 기울기로, 그러한 타들어가는 삽입으로. 그러나 그들에게 원래 그러한 모양이라는 것은 없었고, 오늘 누워있던 모든 나무들이 사실 어제는 우뚝 서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늘 모래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몸은 어제는 자신의 내장까지 뒤집어 드러내고 있었고 그것들은 너무 끊임없이 일시적으로 생을 보였다.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왜 건너편의 해변가를 먼저 다녀왔는지, 왜 끊임없이 이동하고 움직이는지. 그러한 왜는 모든 것의 지속 가운데 마주침의 행위이지 더이상 단순한 질문이나 답변이 아닌 게 되었다. 끊이지 않고 숨을 쉬고 끊이지 않고 죽지 않고 끊이지 않고 움직이는 가운데 잠시간의 정지인 것이다.
이틀에 걸쳐 하루에 다섯시간씩 쉼 없이 움직였다. 걷고 또 걸어서 신체를 이동하는 행위는 새로운 대지와 대양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초단위의 시각적 사후성이 파노라마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고 겹치는 지속의 경험이었다. 내가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대상들 사이에 있었다. 나무와 모래 사이에, 대지와 대양 사이에, 걷기와 멈춤 사이에, 3년 전과 오늘 사이에.


Across the Ocean

In October, I will be visiting the southeastern coast of England.
Prior to my trip, I used Google Maps to mark the location of my accommodation and the area I planned to visit. While doing so, driven by a subconscious and hierarchical desire to gain an overview of London’s terrain from above, I zoomed out on the map using tips of my fingers. As I did, I noticed another marked location across the sea, sharing an almost identical latitude of 52.3692012, 1.7056182(DD) and 52.3742865, 4.5226889(DD) - with the sea lying in between them. One of which was a place I had visited three years ago, while the other is a destination I will be reaching in two weeks.

The continent located across the sea was the Netherlands, and the beach there was within walking distance of the accommodation where I stayed near Haarlem. The beach had a strong wind that blew the tiny sand particles inland, resembling the movement of dusk.

The place I will be visiting in a month is the beach area of Wrentham, which is featured in W.G Sebald’s novel "The Rings of Saturn." In fact, that's precisely why I have chosen to visit that place. It makes me wonder how I ended up in Haarlem when I didn't know much about him, and decided to visit Wrentham after reading his book. When I stand by the sea, will I be reminded of the coastline beyond reach, along with my past self from three years ago? The sea here will blend with the image from my memory, not as a vertical and flat projection parallel to my line of sight, but as a horizontal expanse that extends beyond it, pointing to the memories of the past. -

- I start to imagine.
- I start to imagine. Upon the establishment of a presupposed relationship due to a symbolic coincidence, one might posit that I would see the object through the lens of the past. This may be a regrettable experience for some. Yet, have I ever felt what it's like to see something as it is, or as I did the very first time? Could this dizzying coincidence that tinkers in my consciousness cause any discomfort? I am feeling neither exclusively happy nor sad. I have purchased an SD card for my camcorder and a pair of boots in case of rain. I am carefully considering what to pack in my bag, how to manage lunch and dinner for the day, and deciding on the optimal time to walk to the beach, also with a slight sense of anticipation for the peculiarities I might encounter while attempting to execute everything according to the plan.

If we think of the sea as a flowing entity composed of an infinite number of surfaces without a fixed shape, or if we imagine it as a cuboid that is squeezed at every moment, wedged between two continents, I could observe some of its surfaces from two different angles. In the Netherlands, I believed I saw the sea, and while in Wrentham, I took turns reciting the names of the two beaches. After these two encounters, the sea and I became substances that could be confronted from countless angles, and the lack of a settled representation was growing proportionally.

At the beaches of Wrentham and Haarlem, I discovered adjacent sand cliffs and thin sand stems symmetrically and identically present. However, much more strangely, there were trees scattered all around Wrentham that appeared vibrantly dead. They had a smooth, shiny appearance with a bleached gray color, as they were deprived of all moisture by the sea breeze and sand. The ends of their trunks on both sides of the tree column were split so finely that replicating their delicate shape seemed an impossible task. On the cliff face, a certain form stubbornly presented itself, as if the roots alone constituted its entire shape, stretching out at right angles to the cross-section – quite literally, a tree turned ninety degrees. But was it the root or the stem?
The trees lying on the sandy beach revealed their stems, trunk, and roots, all buried within the sand, unveiling and concealing them in a manner that followed the curve of non/visualization. Everything bore a bizarrely specific and elegant nature. They were no longer living organisms that shared oxygen and carbon dioxide with me; instead, they exhibited a corporeality that shared transformation and movement with the sand. Since life isn’t necessarily more vibrant and complete than death, I couldn't discern whether they were dead or alive. Yet a certain power emanated from them. This power wasn’t solely attributed to the trees or the sand but rather existed between the trees, sand, and wind.

One incident made this even clearer. On the first day in Wrentham, I arrived at my accommodation around 4 o'clock and headed straight to the beach, reaching the shore a little after 5. As darkness closed in behind me, I sought out a landmark that could guide me back to the exit should it become too dark. I came across a nearby tree with a charred black trunk, roughly my height. Using the burned tree trunk as my reference point, I wandered the coastline for hours until I made my way back to the accommodation. During that afternoon, I found a deserted bunker near the sand cliff and witnessed a rainbow rising beyond the horizon just before sunset. The vibrant trees I mentioned earlier were sights I encountered the following morning as I walked in the opposite direction through the same entrance.

The scenery was intense. After walking for a few hours in a state of rapture, I headed back to the entrance to catch an express bus on time. Before departing, I walked a bit further along the opposite coast, passing the exit, to once again take a look at the landmark tree from last night. Upon reaching the tree, I discovered that it had fallen overnight. The end of its burned black stem was no longer pointing towards the sky but was buried in the sand, and the center of the stem had slightly curved into a shallow arc shape. I believed that the trees I had seen that day might have existed in such forms for much longer than my lifetime; with such curves, slopes, and flashing insertions. Yet, they didn't possess such originally shapes, and all the trees now prone on the ground might have been standing upright just the day before. The bodies concealed in the sand today had been fully exposed yesterday, exhibiting their innards. They seemed to exude an excessive vitality for something so transient and boundless.

Why did I come here? Why did I first visit the beach on the opposite side? Why am I in constant motion? Such "whys" have transformed into acts of confrontation amidst all that endures, no longer mere questions or statements. They are momentary pauses within continuous breath, perpetual undying, and unending movement.
For two days, I journeyed for five hours each day without respite. The act of walking and maintaining constant bodily motion wasn’t merely about discovering new lands and oceans; it was an extended encounter with duration that evoked a panoramic effect, with each passing moment leaving a visual afterglow. Everything I beheld existed in-between the objects: between trees and sand, between land and ocean, between walking and halting, between three years ago and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