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국 런던에 와있고, 한국을 떠나기 전 가까운 지인들 몇몇은 나에게 편지를 남겨주었다.
나에게 남겨진 몇 장의 편지들을 다시 펼치면, 편지에 쓰인 이름들, 편지의 호명과 맺음말을 지우더라도 나는 그것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의 필체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문자에 다가가 그것을 독해하기도 전에 벌어지는 일이다. 각각은 너무 고유하고 익숙해서 잠시동안 나를 안정시킨다.
친밀한 사람들의 필체는 그들의 얼굴이나 목소리처럼 하나의 정체성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그것은 이렇다하게 코드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문자이지만 동시에 이미지, 분위기 혹은 움직임이며
코드 안의 코드이거나 코드라고 불리기 애매한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이지만 정해진 모양은 없다. 종이 위를 흐르는 모양새는 글을 쓰는 당사자의 의지와도 어쩌면 크게 연관이 없을 수도, 혹은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내가 알아볼 수 없는 백만 가지의 형태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것은 그들의 얼굴이나 목소리보다도 빠르고 쉽게 나를 속일 수도 있고 그만큼 투명하다.
그건 정해진 이름도 아니고 성별도 아니고 자본의 흐름에 따라 흐르는 신체나(내가 영국에 와있는 것과 같은1) 지성의 모양(체)도 아닌 - 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마주침이다.